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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ADHD 병원 진단을 받다

🤩 성인 ADHD

by Yun#5811 2019. 11. 17.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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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ADHD, 의심을 시작하다.

정신과 첫 방문

 지독한 무기력증이 찾아올 때면 정신과에 방문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이번이 첫 방문이었다. 무언가 특별할거라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는데, 그냥 이비인후과나 내과랑 다를게 없었다. 내 나잇대 사람들도 많았다. 

의사 면담

 '어떤 도움을 받고싶어 오셨냐'는 질문으로 면담을 시작했다. 성인ADHD인것 같아서 왔다고 답하니 그 이유를 물었다. 내가 대강 대답하면 구체적인 상황이나 주변인들의 반응은 어땠는지 등등을 자세히 물었다. 시간감각이 둔한 것 같은 느낌, 같은 일을 끝마치는데 남들보다 힘든 느낌 등등을 이야기했다. 어렸을때는 어땠는지, 성적은 좋았는지, 특별히 못하는 과목은 없었는지 물었다. 주변사람들은 이런 나의 특성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했는지, 부모님은 뭐라셨는지도 물었다. 

 한참 면담을 하고 나서 의사의 반응은 '애매하다'였다. 학창시절 성적이 좋았던 점, 과목별 격차도 없었던 점, 수업을 못따라가진 않았다는 점, 대화에 집중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는 점 등이 'ADHD가 아니다'라는 신호를 보냈나보다. 질문지 검사를 해봐야겠다고 했다.

질문지 검사

 정신과 초진이니 기본적인 성격검사, 정서검사와 함께 ADHD 질문지 검사를 했다. 문항이 엄청 많았다. ADHD인 사람들은 이 문항을 다 읽고 체크하는 것만 해도 무지 고역일것 같았다. ADHD검사는 문항마다  '오 이건 완전 나다!'싶은 것도 있고, '이렇진 않아' 하는 문항들도 있었다. 빨리 끝내고 싶어서 읽자마자 드는 생각대로 답했다. 그런데도 한시간 이상 걸린 것 같다.

 검사 결과는 '정서 이상 없음, ADHD 가능성 높음' 이었다. 사실, 정서도 안좋다고 나올까봐 걱정했었다. 가끔씩 찾아오는 무기력증이 우울증 도는 조울증 또는 생리전증후군이지 않을까 어림짐작 했었다. 질문지에 체크하면서도 '아 나 이거 너무 정서 안좋다고 나오는거 아니야?' 라며 걱정했는데 넘나 정상이라니, 괜한 걱정이었다. 민망쓰.. ㅋㅋ ADHD 검사는 네 항목 중에 두 항목-시간관리, 자기동기부여-이 99%로 나왔다. 나머지 충동조절과 기억 안나는 한 항목도 95% 이상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질문지 검사 결과가 확연해서인지, 컴퓨터로 하는 비싼 그 검사(?)는 진행하지 않았다. 의사선생님은 내게 '성인의 경우 질문지 검사의 신뢰도가 그리 높지 않아 확진이 어렵다. 아주 소량으로 투약해보고 약효를 보고 판단하는 방법도 있는데, 한번 해보겠느냐'고 물었다. ADHD인 사람과 아닌 사람이 경험하는 약의 효과가 다르다고 했다. 콘서타가 기본적으로 각성제 성분인데, ADHD인 사람들은 반대로 '차분해지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우오오오 집중이잘돼! 좋았어 오늘 공부 달린다!!'하는 기분이 들면 ADHD가 아닌거라 했다ㅋㅋ. 다른 특별한 방법은 없는거죠? ... 네 해보고싶어요. 이렇게 계속 살순 없어요 (ㅋㅋ) 라고 답했다. 왠지 비장해지는 순간이었다.

검사비와 약값, 나의 감정

 생각보다 훌렁(?) 약을 받아왔다. 일주일치 받고, 다음주에 어땠는지 보기로 했다. 비용은 한 20만원정도 들 줄 알았는데, 검사비와 약값 포함해서 3만 얼마 정도가 나왔다. 갑자기 많은 금액을 정신과에서 결제하면 카드내역을 보고 부모님이 놀라실까봐 현금을 잔뜩 챙겨갔었는데, 이것도 민망쓰였다. 아마 그 컴퓨터로 하는 검사를 받았으면 금액이 더 나왔을 것 같다. 나로써는 다행이었다. 어떤 검사까지 진행하는지는 의사의 판단이고, 병원마다 의사마다 환자마다 다를 것이기 때문에 나의 경우 왜 추가검사 없이 약을 받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약을 받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약이 잘 맞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면서 한편으로는 약이 맞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감정이 동시에 들었다. 약이 잘 맞아서, ADHD임을 받아들이고, 약의 도움으로 생활을 개선해나가면 더없이 좋을것 같았다. 뭐가 되었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건 희망을 갖게 한다. 반면에 만약 내가 진짜 ADHD라면, 그동안 살면서 나의 'ADHD적 특성' 때문에 혼나기도 하고, 자책하고, 힘들어하고, 스스로 싸워온 많은 날들이 슬퍼질 것 같았다. 내가 내 전두엽이랑 싸워왔네, 하는 허탈함이 들 것 같았다. 그냥 타고난 뇌의 특성이라 남들보다 힘든게 당연했던 건데... 억울할 것 같았다. 그리고 또 '더 일찍 알았더라면, 덜 힘들게 살아올 수 있지 않았을까? 더 큰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도 밀려올 것 같았다. 그런 생각들이 들까봐 ADHD 진단을 받는 것이 두려워졌다.

 

 


다음에는 2주간 약을 먹고 스스로를 관찰하면서 느낀점을 써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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