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이전 포스팅에 어느 분이 질문을 남기셔서, 그에 대한 간단한 답을 포스팅 해볼까 합니다.
사실 답댓글로 포스팅 양해를 구하려 했는데, 며칠째 대답이 없으셔서 질문자분의 개인적인 이야기는 제외하고 질문내용에 대한 답만 해볼게요. 혹시 질문자님 보신다면 양해 부탁드려요.
콘서타 먹기 전에는 1차 시험시간에 집중력, 논리력 문제는 없으셨나요?
한 번에 1시간 30분, 40문제짜리 객관식 문제 한 세트를 푸는 데 어려움이 있진 않았는지를 물어봐 주신 것 같아요.
음, 객관적 수치를 먼저 제시하자면,
[2017 컷-3문제 탈락, 2018 간당간당 합격, 2019 약간 여유있게 합격, 2020 많이 여유있게 합격] 하였습니다.
(1차를 네 번이나 봤네요 부끄럽게도.)
각 해마다 어땠는지를 되짚어보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될 것 같아요.
결론을 미리 말씀드리자면, "인지하진 못했지만 그런 문제들이 있었고, 운 좋게도 해법을 찾았었다."입니다.
긴 글 읽기 싫으시면 맨 아래만 보시면 되겠습니다~
2017년도
공부를 시작은 했지만, 도저히 공부를 하지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PSAT 한 세트를 한 번에 풀지 못했고, 문제를 보면 풀기 싫다는 마음 뿐이었던 것 같아요.
특히 자료해석이 그랬습니다. 숫자를 보고, 증감이나 대소를 판단하기까지의 사고과정이 꽉 막혀있는 느낌.
문제와 제 사고과정이 따로놀고, 시험지 위 10cm정도 높이에 붕 떠있는 느낌..?
그래서 그냥 '어떻게든 되겠지'하는 마음으로 회피하기 바빴고, 결과적으로는 기출 n개년을 겨우겨우 한번정도 보고 들어간 것 같습니다. 사실 이 시험에 대한 감도 못잡던 상태였던 것 같아요.
그 땐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말씀하신 집중력, 논리력 문제를 겪고 있었던 것 같네요.
물론 PSAT을 공부하지 않고도 바로바로 풀어낼 수 있는 사람이 많진 않겠지만, 이 때의 저는 PSAT 문제를 "푸는 행위" 자체를 스스로 하지 못하는 수준이었던 것 같습니다.
2018년도
운 좋게도 다들 열심히 하시는 1차 스터디에 들어가 처음으로 1차 공부를 제대로 시작하게 됩니다.
세 문제 차이면 그다지 큰거 아니야? 했던 제 생각이 무지에 근거한 건방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지요.
아마 이 스터디가 아니었으면 첫 해와 똑같이 엉망인 생활패턴으로 공부를 제대로 해나가지 못했을 것 같아요.
이 때 하루에 언어 자료 상황 세 과목을 전부 풀고, 복습하고, 추가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공부도 했습니다. 하루종일 1차만 했어요.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굉장히 소속감 높고 모두가 열심히하는 스터디였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정해진 시간에 모여서, 시간을 맞춰 동시에 같은 문제를 푸니까 마치 고등학교 때 학교에서 사설 모의고사를 보는 것과 같은 강제 훈련이 되었던 거지요.
저는 혼자서는 죽어도 집중을 못하는데, 적어도 시험시간 만큼은 온 힘으로 집중할 수 있습니다.
아마 성과에 대한 압박감, 시간제한에 따른 긴장감 같은 것들이 제가 집중하게끔 강제하는 효과를 주는 것 같아요.
ADHD의 뇌에는 업무의 우선순위에 대해 now 아니면 not now 두 가지 밖에 없고, 대부분은 not now 라 하잖아요?ㅋㅋ 스터디 참여가 PSAT 문제풀이를 강제로 now로 끌어와 주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제가 ADHD인 줄 몰랐고, 스스로를 공부 하기 싫어하는 이상한 고시생.. 정도로 여겨왔기 때문에 이렇게 제 증상에 딱 맞는 해법을 찾게 된 건 순전히 운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2019년도
전에 합격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 때는 모여서 문제 풀고 헤어지는 스터디에 들었습니다.
18년도만큼 열심이진 않았지만, 적어도 90분동안 집중해서 문제푸는 건 훈련이 한번 되어있어서 어렵지 않았어요.
문제를 계속 풀면, 즉각적으로 제 점수를 알게되고, 상위 퍼센티지 등등으로 현재 내 실력이 괜찮은지 부족한지도 바로바로 파악할 수 있어서 스스로 피드백이 가능했습니다.
이 때 스스로가 현명했던 건 혼자서 하겠다고 나대지 않고 스터디에 들어간 선택입니다.
자기 내부의 동기부여보다는 외부 제약이 저를 움직인다는 사실 정도 까지는 인지하고 있었나보네요.
2020년도
19년 11월부터 ADHD 진단을 받고 복용을 시작했기 때문에 사실 1차 공부를 시작하며 나름의 기대도 했습니다.
콘서타를 먹었으니 더 집중이 잘 돼서 점수가 오르지 않을까? 하는 ㅎㅎ
근데 예전과 똑같이 모의고사에서 죽쑤고, 자료해석에서 스트레스 받고 하더라고요. 약간 실망함 ㅎ
그래도 특별히 다른 공부를 하지 않았는데 실전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았기 때문에 어느 부분인진 모르겠지만 약물치료의 도움을 크게 받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제가 아무리 시험날 주사위 6이 떠도 재경직 커트라인을 넘을 수 있을거란 생각은 꿈 속에서도 못해봤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점수가 그렇게 나왔어요.
추측해보자면, 문제 푸는 과정에서 실수를 잡으려는 노력의 끈(?)을 실전에서 놓치지 않게끔 하는 데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요?
문제 푸는 중간 중간 딴 길로 새서 사고의 고리가 탁 끊기는 걸 막아준 걸까요
아니면 체력이 소진되던 오후까지 지치지 않고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게끔 해준걸까요
저도 잘 모르갯슴다.
시험날은 정신없이 지나가서 잘 기억이 안나잖아요..
음 그래서 결론을 내려보자면, 제가 인지하진 못했지만 확실히 집중력/논리력 문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흔히들 "글자가 머리로 입력이 안되고 튕겨져 나간다" 라고 표현을 하던데, 사실 저는 글 읽는데는 문제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이 말에 공감하지 못했었거든요.
근데 지금 보니 PSAT 문제를 볼 때 딱 "글자가 튕겨져 나가는" 상태였던 것 같네요.
그에 대한 해법은 강제력 있는 스터디에서 정해진 스케줄로, 같이 문제를 푸는 것 이었습니다.
- 스터디원들에 대한 책임감, 열심히 하지 않으면 드는 미안한 마음 같은 것이 저의 우선순위를 바꾸었고,
- 동시에 문제를 풀면 시간 압박, 점수 압박 때문에 강제로 집중이 되었고
- 즉각적인 평가가 이뤄졌기 때문에 동기부여도 자동으로 되었나봅니다.
물론 스터디에서 공부를 통해 실력이 올라갈수록 문제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든 영향도 매우 컸을 것 같습니다.
외부적 제약을 도입해서 동기부여 안되는 제 전두엽의 멱살을 잡고 독서실로 끌고나왔다고 표현해도 될 것 같아요.
꼭 PSAT 이 아니더라도, 공부에 목표나 욕심은 있는데 집중력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계신 분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네요.
가장 좋은 건 스스로의 특성을 파악하고 그에 대한 해법을 고민해보는 일인것 같습니다. ADHD이더라도 사람마다 증상의 정도나 특성이 천차만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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